손주와 함께 즐기는 취미 활동, 뇌 건강까지 챙기는 이유
토요일 아침, 손주가 놀러 온다는 문자를 받으면 반가우면서도 살짝 고민되실 겁니다. “오늘은 또 뭐 하고 놀아주지?” 종이접기 몇 번, 그림 몇 장 그리고 나면 금세 시들해지는 표정을 보며 머리를 싸매신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저도 조카를 몇 시간 맡았다가 삼십 분 만에 밑천이 떨어져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민이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최근 해외 연구에서는 손주와 보내는 시간이 조부모의 기억력과 언어 능력에도 실제로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손주와 노는 게 정말 두뇌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네덜란드 틸뷔르흐대학교 연구팀이 영국 노화 종단 연구(ELSA)에 참여한 조부모 2,800여 명의 자료를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손자녀를 돌본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기억력과 언어 유창성 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돌봄’에는 함께 놀거나 여가 활동 하기, 숙제 돕기, 등하교시키기, 식사 준비하기 같은 게 포함됐다고 해요.
제가 더 눈여겨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이 결과가 나이나 건강 상태, 교육 수준, 결혼 상태, 자녀·손주 수 같은 다른 요인을 감안한 뒤에도 그대로 유지됐고, 돌봄 횟수나 종류와 상관없이 나타났다는 점이에요. 자주 만나든 가끔 만나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자극이 된다는 뜻이죠.
다만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이건 인과관계를 증명한 연구가 아니라 연관성을 보여주는 관찰 연구예요. 그러니 “손주랑 놀면 무조건 치매가 예방된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이 지점은 좀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만으로도 설득력은 충분한 이야기예요.
실제로 조부모와 손주는 무엇을 함께할까요?
그럼 다른 집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한국노년학회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대학생 손자녀 274명을 조사했는데요, 명절이나 생일에 함께 지내기, 함께 텔레비전 보기, 함께 식사하거나 자기 같은 활동은 많이 하는 반면, 편지 주고받기나 함께 운동하기, 운동경기·영화 관람 같은 활동은 상대적으로 적게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공유 활동을 세 가지로 나눴어요.
- 원조 활동 — 용돈을 주거나 고민 상담을 해주는 등 도움을 주고받는 활동
- 동반 활동 — 함께 식사하고, TV를 보고, 명절을 보내는 등 시간을 같이 보내는 활동
- 사교 활동 — 편지를 주고받거나 취미를 함께 즐기는 등 좀 더 적극적인 교류 활동
제 눈에 재미있던 건, 손주가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함께 노는 시간이 많다가 청소년기, 대학생 시기로 갈수록 ‘동반 활동’ 위주로 좁혀진다는 점이에요. 그러니 아직 어리다면 지금이야말로 몸으로 부딪히며 노는 취미를 만들기 딱 좋은 시기라고 봅니다.

연령대별로 달라지는 손주와의 취미 아이디어
나이에 따라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은 꽤 달라집니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몸으로 놀아주는 게 최고지만, 초등학생만 되어도 대화가 되고 규칙 있는 놀이를 즐길 수 있죠. 청소년기라면 오히려 조부모가 새로운 걸 배워서 함께하는 편이 더 잘 통하기도 하고요. 아래 표로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보시다시피 나이가 어릴수록 몸을 움직이는 놀이가, 나이가 들수록 대화와 취향 공유가 핵심이 되는 흐름이 보입니다. 억지로 맞추기보다 요즘 무엇에 관심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개인적으로는 그 대화 자체가 이미 훌륭한 ‘사교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조부모들 사이에서 인기인 취미, 따로 배워서 함께하기
잘 놀아주려고 아예 새로운 걸 배우러 다니는 어르신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 어르신은 지역 노인복지관 종이접기 수업 첫날, 참석자 12명 중 9명이 손주와 놀아주려고 신청했다고 밝힌 경험을 전하기도 했어요. 가르쳐줄 생각에 오히려 본인이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는 이야기였죠. 참고로 이런 복지관 프로그램은 만 65세 이상이면 한 달에 만 원 정도 수강료로, 만 60세 이상이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하니, 거주지 근처 노인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문화센터를 한번 알아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정보는 지역마다 조건이 조금씩 다른 편이라, 직접 전화로 확인해보는 게 제일 정확하더군요.
종이접기 외에도 요즘은 캘리그라피, 천연 비누 만들기, 목공, 사진 촬영 같은 수업을 배워 함께 만들기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부모 세대보다 오히려 손이 야무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작품에 손주들이 더 감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답니다.

함께 취미를 즐길 때 이런 점은 꼭 챙기세요
즐거운 시간을 만들려면 현실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하는 게 좋습니다. 아래는 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 것들이에요.
- 체력에 맞는 활동 선택 — 등산이나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코스로, 중간중간 휴식을 넉넉히 잡으세요.
- 일방적인 놀이 강요는 피하기 — 흥미 없어하는데 계속 이어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 부모와의 소통 — 식습관이나 알레르기, 안전 관련 사항은 미리 확인해두는 게 안전합니다.
- 조부모 자신의 시간도 지키기 — 돌봄이 과도한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여가와 건강 관리도 함께 챙기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관련 기사들에서도 지원이 반복될수록 조부모 자신의 여가나 건강관리, 사회적 관계망이 조금씩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있어요. 마지막 항목은 지나치기 쉬운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중한 만큼, 내 삶도 지키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오래도록 즐거운 관계를 이어가는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사진과 기록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은 취미예요
함께한 활동을 사진으로 남기고, 간단한 일기나 앨범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훌륭한 취미가 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사진첩을 같이 넘겨보며 “그때 여기서 이랬었지” 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되기도 해요. 손주 입장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사진과 함께 또렷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가족 여행이나 명절 모임 때 찍은 사진을 모아 작은 포토북을 만들어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거창한 장비 없이 스마트폰 앱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완성한 걸 선물하면 그 반응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저는 이런 기록 남기기를 미리미리 해두시길 권하는 편입니다. 나중에 몰아서 하려면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텃밭 가꾸기, 계절을 함께 느끼는 취미
도시에 사시더라도 베란다 화분이나 근처 주말농장을 이용하면 손주와 함께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습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며칠 뒤 싹이 튼 걸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는 큰 기다림과 성취감을 주는 경험이거든요. 상추나 방울토마토처럼 손이 덜 가면서도 성장 속도가 빠른 작물부터 시작하면 부담이 적습니다.
수확한 채소로 함께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예요. 직접 기른 재료로 만든 음식은 평소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편식하던 아이도 의외로 잘 먹는 경우가 많답니다. 제 경험엔 ‘내가 키웠다’는 그 자부심이 입맛보다 세더군요.

마무리하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서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종이접기든, 텃밭 가꾸기든, 함께 TV를 보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이든 방식은 상관없어요.
오늘 손주를 만나면 거창한 계획 대신 “우리 오늘 뭐 하고 놀까?” 한마디로 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남는 추억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