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기능 저하를 늦추는 일상 습관, 오늘부터 바꿀 수 있는 것들
부모님이 전화기를 든 채 “어, 뭐 하려고 했더라” 하고 멈추시는 모습,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별일 아니라 넘겼는데 이상하게 며칠씩 마음에 남더군요.
이런 순간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그냥 두느냐, 아니면 오늘부터 하나라도 바꾸느냐.
국제 학술지 랜싯(Lancet) 치매 위원회 자료를 보면, 치매 위험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생활 요인에서 온다고 합니다. 유전이나 나이처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절반 가까이는 손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조절 가능한 절반’에 해당하는, 근거가 어느 정도 쌓여 있는 습관들만 골라 하나씩 정리해 봤습니다. 저 스스로도 부모님께 권해 드리려고 자료를 찾다가 묶어 둔 것들입니다.

인지기능 저하, 왜 미리 신경 써야 할까요
인지기능 저하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닙니다. 기억력, 언어 능력, 판단력 같은 뇌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다가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그때 ‘치매’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숫자로 보면 좀 실감이 납니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15년 63만 명에서 2024년 105만 명까지 늘었고,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흐름을 완전히 막을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예방 활동을 꾸준히 한 사람은 발병 시기를 평균 2년쯤 늦출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2년이면 스스로 걷고 대화하고 가족을 알아보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2년이라는 숫자가 이 글을 정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운동, 약보다 먼저 챙겨야 할 습관
운동이 인지기능에 좋다는 말,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흘려듣게 되지 않으십니까.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조금 더 구체적이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국내 성인 1,144명을 대상으로 한 다기관 연구에서는 신체활동 수준이 높은 집단일수록 알츠하이머병 관련 혈액 바이오마커 수치가 낮고, 인지기능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JAMA Network Open에 실렸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운동은 뇌로 가는 혈류를 늘려 산소와 영양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해마를 비롯한 기억 관련 영역의 신경세포 생존과 성장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빠르게 걷기, 계단 오르기, 가벼운 근력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겪어 보니 중요한 건 강도보다 지속인데, 연구에서도 효과를 보려면 최소 4주 이상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걸으면서 숫자를 세거나 대화를 나누는 ‘이중 과제’ 방식으로 운동하면 신체 기능과 인지기능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저는 산책할 때 그날 있었던 일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아 봅니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지만, 시작으로는 이 정도로 충분하더군요.

희망감과 정서 상태도 뇌 건강에 영향을 줍니다
이건 저도 좀 의외였던 대목입니다. 2025년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즈 인 에이징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국내 연구인데요.
65~90세 인지 정상 노인 152명을 분석한 결과, 스스로 느끼는 희망감이 인지기능과 관련이 있었고, 특히 신체활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마음의 상태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기보다 작은 목표라도 세우고 성취감을 느끼는 편이 뇌 건강에도 낫다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글에서 제일 오래 남았습니다.
조절 가능한 위험요인, 한눈에 정리해보면
랜싯 위원회가 제시한 조절 가능한 위험요인은 모두 14가지입니다. 말로 늘어놓으면 헷갈려서 아래 표로 정리해 뒀습니다.

이 요인들을 잘 관리하면 치매 위험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최근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서 모든 요인을 한 번에 잡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땐 다 하려 하지 말고, 나한테 해당되는 것부터 순서를 정해 하나씩 손대는 편이 낫습니다.
이건 다른 일에서도 늘 그렇더군요.
사회적 관계, 생각보다 강력한 예방책
바쁘게 살다 보면 ‘요즘 누구랑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나’ 싶은 순간이 옵니다. 저도 일에 파묻혀 지낼 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고립은 조절 가능한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가족·친구와의 대화, 지역 모임이나 종교 활동, 자원봉사 같은 활동은 정서적 지지망이 되어 줄 뿐 아니라 뇌를 계속 자극하는 역할도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대화할 기회도, 새 정보를 접할 기회도, 감정을 나눌 기회도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뒤집어 말하면, 정기적으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뇌를 계속 돌리는 훈련이라는 뜻입니다.
수면과 청력, 놓치기 쉬운 두 가지
수면 부족이 인지기능과 관련 있다는 건 다들 아시는데, 청력 저하가 조절 가능한 위험요인 중 비중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는 건 의외로 잘 안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자료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소리가 잘 안 들리면 대화를 피하게 되고, 그게 다시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청력이 예전 같지 않다 싶으면 방치하지 말고 검사를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수면은 하루 7~8시간을 목표로 하되, 코골이가 심하거나 자다가 자주 깨는 증상이 있다면 수면무호흡 검사를 고려해 볼 만합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다음 날 집중력과 기억력에 바로 영향이 옵니다. 이건 굳이 연구를 들이대지 않아도 하루만 못 자 보면 누구나 아는 부분이죠.
식습관 — 지중해식·MIND 식단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
채소, 과일, 통곡물, 견과류, 생선, 올리브유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식 식단, 여기에 뇌 건강에 초점을 맞춘 MIND 식단이 이 분야에서 꾸준히 언급됩니다.
특정 음식 하나가 마법처럼 듣는 건 아닙니다. 식단 전체의 패턴이 혈압·혈당·콜레스테롤 관리와 맞물려 뇌 건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보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뭘 더 먹느냐’보다 이 패턴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일부 대규모 연구에서는 실버 전용 멀티비타민을 매일 섭취한 그룹이 인지기능과 기억력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전반적인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약 2년 정도 늦춰졌다는 결과도 보고됐습니다.
다만 이걸 영양제가 치료제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결핍이 의심될 때 혈액검사로 확인한 뒤 보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두뇌 자극 활동, 꾸준함이 핵심입니다
독서, 퍼즐, 악기 연주, 새 언어 배우기 같은 활동은 흔히 ‘두뇌 훈련’으로 소개됩니다. 실제로 인지 강화 프로그램이나 통합 프로그램을 적용한 국내 연구들에서 신체기능, 인지기능, 우울감, 삶의 질 저하 등에 긍정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결론은 비슷합니다. 한두 번으로는 어렵고, 연구들도 최소 4주 이상 꾸준히 이어갔을 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앞의 운동 이야기와 판박이죠.
새 취미를 시작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익숙한 것부터 난이도를 조금씩 올려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늘 하던 낱말 퍼즐 대신 한 단계 어려운 걸 골라 보거나, 다니던 길 말고 낯선 골목으로 돌아와 보는 것도 뇌에는 작은 자극이 됩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병원 진료를 고려하세요
단순한 건망증과 병적인 인지기능 저하는 다릅니다.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대개 기억이 떠오르지만, 인지기능 저하가 진행 중일 때는 힌트를 줘도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묻는다
- 익숙한 장소에서도 길을 헷갈려 한다
- 약 복용이나 돈 관리를 예전만큼 못한다
- 성격이나 감정 기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 요리, 금융 거래 등 늘 해오던 일을 제대로 못한다
가까운 보건소의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로 인지기능 선별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건 미리 해 두시길 권하는 편입니다.
걱정만 안고 있는 것보다, 한 번 확인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놓이더군요.

오늘부터 하나씩, 무리하지 않게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눈치채셨을 겁니다. 인지기능을 지키는 습관은 사실 특별할 게 없습니다.
걷기, 사람 만나기, 잠 잘 자기, 골고루 먹기, 필요하면 안경이나 보청기 챙기기.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간격입니다. 겪어 보니 그 간격이 생각보다 큽니다.
한꺼번에 다 바꾸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주는 하루 20분 걷기 하나, 다음 주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그 정도면 시작으로 충분합니다.
작은 습관 하나가 쌓여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부모님께 전화부터 한 통 드릴 생각입니다.